우리 몸은 왜 건강에 해로운 것만 좋아할까?

우리 몸은 왜 건강에 해로운 것만 좋아할까?

염동규
염동규
2024-04-12

단순한 생존을 넘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된 현대 사회, 그러나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뇌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건강한 것으로 인식되는 대부분의 행동들을 우리의 뇌는 좋아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꾸준히 운동하고, 틈틈이 독서하고, 복합 탄수화물과 양질의 단백질을 포함한 자연식을 섭취하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비법이 무엇인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잘 모르겠다고 해도 적은 노력으로 쉽게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생명의 탄생 이래로 줄곧 생존과 번식을 최상위 가치에 두고 진화해 왔으며 이에 유리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진화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더 잘 갖춰진 개체들이 더 높은 확률로 생존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지금의 자동화 시스템들은 현대인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걸까요?

너무 느린 진화

윈도우를 사용하다 보면 종료할 때 맨날천날 업데이트를 하라고 해서 짜증 났던 적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랑합니다). 매우 완성도가 높고 성숙한 제품인 윈도우 운영 체제도 여러 가지 보안 이슈 때문에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권장합니다.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했던 앱들도 수시로 기능과 성능, 보안 등을 업데이트합니다. 당장은 최적화를 했다 하더라도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변화하는 상황과 트렌드에 맞게 끝없이 진화해야 하죠.

생명체는 한 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려면 최소한 한 번의 번식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계획적인 업데이트가 아니라 무작위적인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살아남으면 성공한 업데이트고, 죽으면 실패한 업데이트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비교했을 때 번식 주기가 길고 일생 동안 적은 수의 자손을 가지는 편에 속합니다. 따라서,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에 비해 인간이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우리 몸은 아직 구석기 시대의 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환경은 인류의 역사에서 너무나도 전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짧은 기간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철 지난 '자동 생존 시스템'을 갖고 있는 우리의 뇌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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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다

생명체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즉, 진화의 방향성은 무작위적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지금 나라는 인간은 아주 높은 확률로 완성품이 아닌 '실험 중인 표본'일 것이리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스럽게 표현한다면, '나'라는 개체는 유전자 운반의 성공 여부를 실험하고 있는 수많은 개체들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아주 많은 부분이 후천적으로 결정되기는 하지만, 또 아주 많은 부분을 타고나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논리대로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현대 사회에서의 생존 또는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질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고, 고구마보다는 초콜릿이 먹고 싶다거나, 운동하러 체육관에 가기보다는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싶은 것들처럼 말이죠.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가장 이상적인 기질들만 가진 개체가 살아남았던 적이 없을뿐더러 '이상적인 기질'의 기준 또한 시대별로, 지역별로, 문화별로 항상 달랐습니다.

(열역학적으로 결점이 없는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며 오히려 너무 무결하고 이상적인 개체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원리를 보면 가장 최적의 개체만이 살아남는다기보다 가장 적합하지 않은 개체만이 도태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더 정확히는 수많은 개체들 중에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소수의 개체를 결과적으로 "가장 적합하지 않았던 개체"라고 분류하는 것이죠.

요약하자면,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는데 해가 되는 모든 기질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유전자 운반체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있어서 다소간에 도움이 되었거나 최소한 실패할 만큼 해롭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죽기 전에 성공적으로 자손을 남긴다면 후대에 이러한 기질들이 다시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유전되겠죠.

우리 몸은 구두쇠

다시 운동과 식단으로 돌아와 볼까요? 우리 몸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습관 형성에 그토록 비협조적인 이유는 '연비'에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남아있는 동물들은 연비를 미친 듯이 향상시키는데 성공한 개체들입니다. 즉, 적은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된 생명체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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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연비를 높일 수 있었던 첫 번째 전략은 가벼운 재료입니다.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이 주기율표의 고작 1~2주기에 있는 가벼운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료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무거운 재료들과 유사하거나 심지어 더 뛰어난 물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죠. 몸이 가벼우면 당연히 움직이는데 적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높은 연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신경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잃을 때 신경계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에너지를 얻을 때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대체로 더 빨리 더 큰 에너지를 얻을수록 긍정적인 감정이나 감각을, 빠르게 많은 에너지를 잃을수록 부정적인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죠.

이러한 경향성은 동물들이 빙하기를 겪으면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갖고 높은 출력을 내도록 설계된 생명체들은 이 시기에 쉽게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몸집이 작아서 열손실이 적고 연비가 높은 생명체들이 살아남아 생태계 피라미드를 차지하게 되었죠.

현생인류보다 더 몸집이 크고 강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종적으로 현생인류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까닭들 중 하나도 이러한 에너지 효율성에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몸은 먹을 것이 부족하고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냉장고만 열면 사시사철 먹을 것이 가득하고, 생존을 위해서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는 적합할 리가 없죠.

마치며...

장황하게 이야기해 봤지만 결론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은 그대론데 세상이 너무 빨리 변했다."

물론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만큼 변화가 빠른 적이 없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이, 아니 그 어떤 생명체의 성공적인 생존과 번식도 도전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전쟁과 질병의 역사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의 고민이 너무 작고 귀여워서 부끄러워질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이 상황을 단순히 '복에 겨운 고민', '배부른 푸념'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잉은 결핍만큼이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도전이 결핍 속에서의 인내였다면 이제는 과잉 속에서의 절제로 그 모양을 바꾼 것이죠. 결핍 속에서 몸부림쳤던 우리의 선조들처럼 우리는 과잉 속에서 몸부림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운동과 식단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쉬운 방법' 따위를 찾는 일은 단순하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벼운 투정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맞닥뜨린 꽤나 커다란 도전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작은 동기부여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글을 마쳐봅니다.

(p.s.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상에 수많은 인구가 결핍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헬스장을 등록할 수 있으며, 더 예쁘고 건강한 몸매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임을 밝힙니다.)